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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파파 이야기/일상의 궁금증 해결!

대한민국 최초의 특허품, 까스활명수

<제 서브블로그에 있던 글을 블로그를 통합하면서 옮겨 왔습니다>



예전부터 TV에서 광고로도 많이 보고 어른들이 속이 불편할 때를 위해 집에 상비약처럼 모시고 있던 바로 그,,

부채표 가스활명수. 이 가스활명수가 알고보니 진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어요~.


1. 회사 : 동화약품

2. 출시 : 1897년

3. 상표 : 부채표.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 8월에 조선총독부 특허국에 "부채표"라는 상표를 등록했구요,

4. 상품명 : 활명수. "활명수"라는 이름은 1910년 12월에 특허국에 등록을 했죠.


박물관이나 역사책의 근대 조선 사진을 많이 보셔서 아시겠지만

한국사람들은 많은 양의 음식을 빨리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갓 쓴 어르신 앞에 배만한 밥공기 올려진

사진 다들 한번쯤 보셨을거에요~.

이렇게 먹는 "머슴밥"이 한국인 특유의 식습관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위장병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었던

활명수는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 우리나라에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만점이었죠.


1897년 출시되어 우리나라 특허국에 처음으로 등록된 상품인데,

일제강점기때 특허국에서도 받아준 물건이니 뭐 친일 뭐 그런거 아니겠느냐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활명수는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소화제'로 널리 알려져 있죠.

게다가 동화약품 초대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와 비밀연락을 주고 받는 연통부의 책임자 역할을 했구요.

그래서 활명수를 판 돈의 일부가 독립운동의 발판이 되었고, 민강 선생은 독립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르다 별세하셨죠.

이후 일제의 압박으로 동화약품이 파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어요.


처음 출시된 활명수는 소화를 보조하는 개념보다는 오히려 제대로된 소화제로서 개발된 상품인데요,

구한말 궁중에서 임금을 보필하는 선전관이라는 무관이었던 민병호 선생이 궁에서 쓰던 전통 한약재와 서양 약재를 섞어서

처음 만들게 되었어요.

이 당시만 해도 뭐 제대로 된 약을 먹겠다 하면 약재를 사다가 마당에서 달여서 약을 우려내어 마시는 방식이었는데,

활명수는 한약처럼 달여 먹을 필요가 없어 선풍적이고 획기적인 약이었죠.

부채표 가스활명수가 워낙 인기가 많아서 유사하게 생긴 제품이 쏟아지자 1910년 "부채표"라는 브랜드마크를

활명수에 달아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 라는 문구를 광고에 계속 사용하게 된거죠~.


요샌 동화약품 내에서 만드는 활명수만 해도 종류가 여러종류에요.

미인활명수니 꼬마활명수니 그래서 다양한 계층을 노려보려고 하는거 같은데,, 그래도 왠지 부채표 까스활명수 딱 이게 입에 붙네요.

홈페이지에 가보면 현재 총 판매량이 나오는데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어요,,

(마트나 편의점같은데 납품한건 세기 힘들텐데 믿을 수가 없네,,,,ㅋ)

지금 보니 83억 5564만병을 팔았다고 하네요,,;;; 어마어마한 숫자죠~? 빈병을 줄세우면 지구를 25바퀴정도 돌 수 있을 정도네요,,ㅡ.,ㅡ;;


쓰다보니 뭔 광고처럼 썼는데, 광고는 전혀 아니구요, 동화제약으로부터 활명수 한 병 받지 못했습니다,,ㅋㅋ

다만, 일제강점기부터 독립운동을 돕던 회사라는 점이 인상적이라,, 처음 만들 때의 그 마음 그대로 계속 활명수를 잘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램에,ㅋ

그리고 속이 더부룩하고 할 때 그냥 탄산이겠거니 하고 활명수 드시지 마시고, 이게 진짜 소화제구나,, 하면서 드시라는 의미에서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ㅎㅎ